본문으로 바로가기

연구보고서

보고서명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가폭력 연구(Ⅲ)
  • Ⅰ. 연구의 목적

    3년간 진행된 이 연구는 행정처분으로 이루어진 수용처분과 법제화된 보안처분을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회통제의 기제로서 접근하여, 권위주의 정권기에 사회치안 영역에서 주로 도시하층민을 겨냥한 보안처분류 제재에 의한 인권침해 실태를 파악하고 그 발생원인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총 3년차로 기획된 본 연구는 1차 연도인 2019년 연구에서 1961년 군사정변 직후와 1968~1969년도에 시행된 국토건설단 사업, 그리고 부랑인 등을 동원한 자활정착사업을 중심으로 국토개발정책과 연동되어 추진되었던 강제노역동원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살펴보았다. 2차 연도인 2020년 연구는 1972년 유신헌법에 보안처분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삽입된 이후 1975년에 제정ㆍ시행된 「사회안전법」에 의한 보안처분, 그리고 내무부 훈령 제410호 등에 의한 부랑인 수용, 그리고 「윤락행위등 방지법」에 따른 요보호여자 수용, 한센인을 대상으로 한 수용처분 등에 의한 인권침해의 실태와 발생구조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3차 연도인 올해 연구에서는 재범위험성 개념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자뿐만 아니라 일반 범죄자에게 확대되는 계기가 된 1980년 「사회보호법」의 제정과 시행, 그리고 그 배경이 된 삼청계획 5호를 통한 ‘불량배’ 단속과 강제수용 및 감시를 통한 사후관리 방식을 살펴보고, 사회적 배제집단에 대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과거사 정리 방안 및 관련 법적 쟁점을 종합적으로 논의하였다.
    이 연구는 1980년대 사회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삼청교육과 그 후속조치로서 제정된 「사회보호법」의 시행에 따른 인권침해의 실태와 발생구조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함께, 사회치안 영역에서 발생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과거사 정리의 방향과 관련 법적 쟁점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피해회복 방안을 검토하였다. 1차 연도와 2차 연도 연구에서 다룬 사건들을 아울러 관련 피해자 배ㆍ보상 및 명예회복을 위한 정책과 판례 분석을 통해 법적 쟁점을 검토하고 향후 피해회복을 위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특히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과거사 정리에서 배상적 정의와 관련된 법적 쟁점과 개선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문헌조사를 주된 연구방법으로 사용하였다. ① 국가기록원 아카이브 조사를 통해 삼청교육 및 「사회보호법」의 입안ㆍ제정 배경과 실태에 관한 정부문서를 발굴ㆍ수집하고, ② 법무연수원 󰡔범죄백서󰡕 등 공식통계자료를 통해 보호감호제도 운영 현황과 추이를 분석하였다. ③ 삼청교육 및 그 외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재심, 형사보상, 국가배상청구소송 판례들과 관련 법적 쟁점들에 관한 문헌들을 분석하고, ④ 진실ㆍ화해위원회를 비롯하여 과거사 관련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위원회들의 활동 내용 및 피해회복 현황 자료를 수집하여 검토하였다.


    Ⅱ. 1980년대 사회정화사업과 국가폭력

    1. 삼청계획 5호와 인권침해
    1980년 7월 28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사회정화분과위원회는 “불량배 소탕 및 순화계획”을 수립하였고, 계엄사령부와 법무부는 7월 31일 각 계엄사무소와 각급 검찰청에 이를 시달하였다. “불량배 소탕 및 순화계획”은 소탕대상으로 ① 폭력사범, ② 공갈, 사기사범, ③ 사회풍토 문란사범을 열거하고, 그 “현행범과 재범우려자로서 개전의 정이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불량배조직에 가담한 자, 배경세력 비호하에 상습적 반사회적 행위자”에 중점을 둔다고 명시하였다. 그러나 1980년 8월 1일부터 실시된 군ㆍ경 합동 일제검거는 상습범 등의 범죄 우려자를 집중 검거ㆍ소탕한다는 명분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 총 60,755명의 피검거자 가운데 35.9%인 21,869명이 전과사실이 없었으며 초범자를 포함하면 그 비율은 58.2%에 달하였다.
    일제검거는 경찰이 우선 책임을 지고 군이 후방지원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범법행위자, 전과자 외에 ‘지역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에 대한 신고 등을 받아 검거대상자 명단을 작성하였으며 대상자에게 출석할 것을 통보하거나 경찰이 찾아가 영장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검거하였다. 또한 자수기간을 정하여 해당 기간에 603명이 자수하였으며, 일제검거 기간 중에 출소하는 교도소 복역자를 경찰에 인계하여 검거하는 방식도 사용되었다. 이렇게 검거된 자들은 각 경찰서 단위에서 군ㆍ검ㆍ경 합동 심사에 의해 A, B, C, D급으로 분류되었다. 심사는 피검거자들에 대한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채 경찰이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분류심사를 거쳐 B급과 C급으로 분류된 40,347명 중 환자 등 605명을 제외한 39,742명이 순화교육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여성은 319명이었다. 순화교육은 1980년 8월 4일부터 계엄이 해제되기 직전인 1981년 1월 23일까지 11차에 걸쳐 남성은 4주, 여성은 3주간 순화교육부대로 지정된 군부대에서 실시되었다. 순화교육을 담당한 군은 수련생들을 “얼룩진 과거”가 있는 “죄지은 자”로 규정하고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고된 훈련 과정을 “재생훈련”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1단계 순화교육 기간인 1980년 8월 4일부터 8월 30일 사이에 순화교육을 받은 대상자 중 전과가 없는 자가 34%에 달하였으며,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억울하게 검거되었다고 답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죄지은 자”들에 대한 “재생훈련”이라는 군의 묘사는 사실과 달랐다.
    순화교육기간이 종료된 이수자들은 분류심사 결과에 따라 퇴소조치되거나 근로봉사 부대로 인계되어 전차기동진지 구축, 전투진지 공사, 전술도로 공사, 통신선 매설 등의 노역에 투입되었다. 근로봉사는 1980년 9월 8일부터 개시되었고 총 9차에 걸쳐 일제검거 및 순화교육 단계에서 B급으로 분류된 10,016명이 투입되었다.
    순화교육과 근로봉사를 마치고 퇴소조치된 대상자들은 삼청교육 이수자 사후관리라는 명목으로 지속적인 관리 대상이 되었다. 퇴소자들은 퇴소시 훈련부대장이 발부하는 수료증을 항시 휴대하여야 했는데, 수료증에는 대상자의 성명,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본적, 주소와 함께 부대장 명의로 삼청순화교육 수료자임을 확인한다는 내용과 재범시에는 엄중 처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퇴소자들의 명단은 퇴소자의 주거지 관할 경찰서에 통보되었으며 내무부는 각 지역의 행정기관에 지역정화위원회 등을 동원한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퇴소자에 대한 사후관리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경찰은 삼청교육 이수자들의 개인별 사후관리 기록카드를 작성 및 관리하면서 1988년 6월까지 이들의 “삼청교육전과” 기록을 수사자료로 활용하였다.
    삼청계획 5호 대상자들에 대한 폭행 등 가혹행위는 일제검거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어 검거과정에서 군ㆍ경의 폭행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를 포함하여 순화교육 및 근로봉사 과정에서 사망한 자는 54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22명은 일제검거와 순화교육 실시의 초기인 1980년 8월 1일부터 9월 25일 사이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군인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없으며 모두 기소유예, 공소기각, 집행유예, 또는 형집행면제를 받았고,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해자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2. 「사회보호법」과 인권침해
    1980년 12월 5일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되어 같은 해 12월 18일에 공포ㆍ시행된 「사회보호법」은 삼청계획 5호의 ‘불량배 사후관리 방안’ 또는 ‘미순화자에 대한 사회격리 방안’으로서 기획되었다. 「사회보호법」 제정으로 도입된 보호감호는 동종 또는 유사한 죄로 수개의 형을 받거나 수개의 죄를 범하여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보호감호시설에 수용하여 감호ㆍ교화하고 사회복귀에 필요한 직업훈련과 노동을 과하는 처분이다.
    제정 「사회보호법」은 “동종 또는 유사한 죄”로 인한 전과사실이 있을 때에만 보호감호에 처하도록 그 요건을 제한하였는데, 관련 조항은 행위태양과 침해법익이 상이한 범죄들을 “동종 또는 유사한 죄”로 규정하여 보호감호처분의 요건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1989년 법률 개정을 통해 전과 및 단서범죄의 범위를 축소하기 전까지 「사회보호법」은 보호감호 처분의 원인이 되는 단서범죄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고 전과와 동종 또는 유사한 죄를 범하면 보호감호에 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단서범죄와 전과 요건에 대한 「사회보호법」의 느슨한 규정은 누범 및 상습범의 가중처벌을 규정하는 다양한 법률 규정과 결합하여 보호감호라는 전면적인 자유박탈적 보안처분이 손쉽게 부과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제정 「사회보호법」 부칙 제5조에 의거하여 법 시행일인 1980년 12월 18일 당시 순화교육부대 및 근로봉사부대에 수용되어 있던 B급과 C급 대상자 10,288명 가운데 사회보호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보호감호 처분을 받은 자는 7,578명이었으며 이 가운데에는 전과가 전혀 없는 22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사회보호위원회는 각 대상자에 대한 개별심사를 실시하지 않은 채 법무부가 검사 등을 동원하여 분류한 결과를 추인하고 각 등급의 해당자들에 대한 감호기간을 결정하였다. 보호감호가 결정된 자들은 감호시설이 완공되는 1981년 12월까지 근로봉사부대 등에 그대로 수용되어 감호가 집행되다가, 68% 가량의 부칙감호자는 출소 결정을 받는 등 퇴소 처리되었고 나머지 2,400여 명은 청송감호소 개청 이후 감호소로 이감되었다. 부칙감호자들은 사회보호위원회 결정으로 1년에서 5년의 보호감호를 부과받았으며 이 가운데 7,122명은 감호기간이 종료되기 전 중간출소하였고 430명은 만기출소하여 1989년까지 모든 부칙감호자가 출소하였다.
    부칙감호자를 제외한 일반 피보호감호자들의 경우 대부분 다중전과자임은 사실이지만, 전과 등 범죄 특성을 살펴보면 범죄의 내용과 피해의 정도에 있어서 타인의 생명ㆍ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으며 절도범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피보호감호자들의 학력 등의 특성을 보았을 때 이들은 중대한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있는 자들이라기보다는 대다수가 학력과 경제수준이 낮은 생활환경에서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불우한’ 사회구성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보호법」은 삼청계획 5호의 후속조치, 즉 ‘미순화 불량배’에 대한 사회격리 방안으로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법의 형사제재는 그 입안동기상 개선수단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순수한 사회방위만을 목적으로 하는 보안처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989년 법률 개정 전까지 재범의 위험성을 판단하지 않는 필요적 보호감호제도를 두었던 것과 그 집행현실이 형벌보다 더 열악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보호법」에 따른 보호감호제도는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자들에 대한 교육과 개선을 통해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기능은 현저히 부족하였다.
    한편,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구 「계엄법」 제13조가 군사작전 목적을 위한 “군사상 필요”가 있을 때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계엄포고 제13호는 군사작전 목적이 아닌 치안 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계엄법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위법한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2018년 12월 28일에 계엄포고 제13호가 구 「계엄법」뿐만 아니라 1972년 「헌법」과 현행 「헌법」 모두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함으로써 삼청교육이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국가폭력임을 확인하였다. 이에 비추어볼 때, 제정 「사회보호법」 부칙 제5조에 의하여 삼청교육 이수자들에게 실시된 보호감호는 그 대상자들이 위헌인 계엄포고 제13호에 의해 검거되어 순화교육과 근로봉사를 거쳐 사회보호위원회의 심사를 받은 결과이므로 그 역시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부칙 조항을 근거로 삼청교육 피해자에게 부과된 보호감호처분은 준사법기관성조차 갖추지 못한 사회보호위원회라는 행정기관이 부과한 형사제재라는 점에서 제정 「사회보호법」 부칙 제5조는 계엄포고 제13호의 위헌성을 봉합하는 법적 장치가 아니라 이 역시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배한 위헌이었다.
    2004년 1월 29일에 제정되어 같은 해 7월 30일에 시행된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삼청교육피해자법’)은 “삼청교육”을 “계엄포고 제13호에 의하여 실시된 순화교육ㆍ근로봉사 또는 법률 제3286호 사회보호법 부칙 제5조의 규정에 의하여 실시된 보호감호”로 규정하고, 삼청교육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자, 상이를 입고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사망한 자, 상이를 입은 자를 피해자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수련생들에게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인권침해를 겪게 한 삼청교육은 헌법적 근거가 없는 국가폭력으로, 이로 인하여 사망, 행방불명되거나 상이를 입었다는 점이 증명된 피해자 외에도 ‘삼청교육을 받은 사실이 있는 자’ 역시 손해전보를 비롯한 피해회복의 권리를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Ⅲ. 과거사 사건에 대한 배ㆍ보상과 피해회복

    1. 과거사 정리와 사법적 배ㆍ보상
    현재까지 이루어진 국가폭력 과거사 사건의 피해회복은 5ㆍ18 광주 민주항쟁 등 개별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배ㆍ보상을 규정한 특별법 등 별도의 입법적 근거가 마련된 경우 외에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개별 소송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거나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하 ‘형사보상법’)에 의한 형사보상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왔다.
    ① 3년간 진행된 본 연구에서 다루었던 사회치안 영역에서의 위법한 공ㆍ권력의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국가배상청구권의 주요 요건을 분석하였다. 첫째,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이 수용처분을 받은 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정부로부터 시설운영을 위탁받은 법인에 의해 발생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국가배상책임의 발생요건인 직무 집행의 주체로서 ‘공무원’ 외에도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을 포함시키고 있다. 둘째,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은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것을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법령 위반이 의미하는 바는 엄격한 의미의 법령 위반뿐 아니라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과 같은 준칙과 규범을 위반하여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한 행위를 하였을 때를 포함한다. 즉, 공무원 등의 직무 집행이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 내지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이는 법령을 위반하여 손해를 발생케 한 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1975년 공포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와 같이 행정기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 행정기관에 대한 업무처리지침이나 법령의 해석ㆍ적용 기준으로 제정한 ‘행정규칙’은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으로 국민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다. 따라서 공무원 등이 행정규칙을 위반한 행위가 곧바로 위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행정규칙에 따른 직무 집행이라고 하여 그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② 본 연구에서 다룬 구 「사회안전법」에 따른 보안감호와 구 「사회보호법」에 따른 보호감호에 대하여 형사보상법에 의한 형사보상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이 확정된 자가 해당 원판결 사건과 관련하여 구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구속이나 보호감호 집행을 당한 경우에는 형사보상법 제2조에 따른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구 「사회안전법」에 따른 보안감호처분에 대한 형사보상 여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구 「사회안전법」에 따른 보안감호는 형사사건의 판결과 별도로 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을 받은 자를 대상으로 하여 법무부장관의 보안감호처분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보호감호처분의 전제가 되는 유죄판결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확정되더라도 이러한 재심판결이 법무부장관의 보호감호처분 결정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보호감호처분 결정은 원칙적으로 행정소송을 통해 취소되어야 한다. 즉, 재심이나 비상상고 절차에서 무죄가 확정된 사건의 피고인에게 원판결에 의한 구금 및 형 집행에 대한 보상청구권을 인정하는 현행 형사보상법 제2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판결에 의하지 않은 보안감호처분 집행에 대한 형사보상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 「사회안전법」에 의한 보안감호처분의 집행을 형사보상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별도의 입법적 조치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③ 국가배상청구와 형사보상청구를 통해 국가폭력 사건의 개별 피해자 및 가족이 그 피해를 금전적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법적 쟁점, 특히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의 문제가 피해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왔다. 이러한 소멸시효 문제는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4헌바148 등 결정(이하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등 결정’) 이후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등 결정은 장기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민법」 제166조 제1항과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장기소멸시효에 관한 「민법」 제766조 제2항 중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사건(민간인 집단 희생사건)과 같은 항 제4호 사건(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에 적용되는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13년 이후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과거사 사건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이 제한되었던 피해자와 유족들이 피해전보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멸시효와 관련된 문제들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우선,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등 결정은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 가운데 그 헌법소원과 관련된 당해 사건 외에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 즉, 헌재 결정일인 2018년 8월 30일 이전에 이미 국가배상청구가 기각된 사건의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진실ㆍ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송달된 날로부터 3년, 또는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한 사건 역시 여전히 단기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국가배상청구권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헌법재판소 2014헌바148 등 결정은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문제를 상당부분 완화하였으나 이 결정이 있기까지 소멸시효에 관한 사법기관의 태도 변화에 의하여 국가배상청구를 하지 못하거나 청구가 기각됨으로써 야기된 피해자 및 유족들의 손해를 모두 회복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소멸시효에 대한 해석상의 혼란으로 인하여 국가배상청구권이 제한되었던 문제를 해결하고 특히 과거사정리법에 규정된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사건ㆍ조작의혹사건의 피해자 및 그 유족의 피해회복에 관한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폭력 과거사 사건에 대하여 국가가 향후 피해자 및 유족이 피해구제를 위하여 제기하는 소송에서 소멸시효의 항변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적 결정과 공적인 선언을 하는 것과 함께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현행 법률을 개선하는 입법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2. 입법적 조치에 의한 배ㆍ보상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다수의 과거사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ㆍ보상 및 지원이 일정 부분 이루어지는 등 한국 현대사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에 대한 피해 구제를 진척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특별법 제정 등 입법적 조치를 통한 피해회복에 있어 한계 역시 존재한다.
    우선, 지금까지 제정된 국가폭력 과거사 사건 관련 특별법들은 대부분 진실규명이나 피해자의 명예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배상 또는 보상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5ㆍ18민주화운동 관련자, 민주화운동 관련자,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삼청교육 피해자 등에 관련된 소수의 특별법에 한정되고 있다. 이처럼 개별 사건에 관한 특별법이 산발적으로 제정되면서 과거사 정리의 대상으로 축적된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회복이 실질적인 이행기 정의의 실현에 이르지 못하고 최소한의 배ㆍ보상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국가폭력 과거사 관련 특별법은 개별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적 맥락과 사회적 분위기, 피해자 및 유족 단체의 조직화 여부에 따라 각각 제정되면서 각 법률에 따라 배ㆍ보상 등 피해회복 조치의 유형, 대상자의 범위 등이 상이하여 형평성과 일관성에 있어 문제가 있고 피해회복 조치에서 배제되는 피해자와 유족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우선 단기적으로는 개별 과거사 관련 특별법에 규정된 피해자 및 유족의 범위, 배ㆍ보상의 유형 및 규모 등을 개정하여 체계성과 통일성을 갖추고 배ㆍ보상심의위원회의 운영방식에 있어 전문성과 일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개별 과거사 관련 특별법에 산재되어 있는 배ㆍ보상 관련 규정을 분리하여 포괄적 성격을 갖는 국가폭력 피해자 배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일관된 원칙을 갖는 기구에 의하여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국가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포괄적 국가폭력 과거사 피해자 배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정함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은 법안의 명칭, ‘국가폭력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의 범위, 손해의 증명, 소멸시효의 특례 등이다.
    우선, 가칭 「국가폭력 과거사 피해자 배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국가폭력배상법안’)을 제정함에 있어 국가폭력의 불법성과 그에 따른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명확하기 위해서 ‘희생자’ 혹은 ‘관련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보상’이 아닌 ‘배상’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폭력배상법안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보장되는 피해자의 범위는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3호 및 제4호에 해당하는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사망ㆍ상해ㆍ실종사건’과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ㆍ상해ㆍ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을 포함하여야 한다. 나아가 손해의 증명에 있어서는 국가폭력 과거사 사건에 있어 불법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과관계 추정 규정과 입증책임의 전환 규정을 마련함으로써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폭력배상법안에 “국가폭력배상법의 적용대상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ㆍ신체ㆍ재산상의 손해 또는 정신적 손해를 입은 피해자는 「민법」 또는 「국가배상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는 소멸시효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내용의 소멸시효 배제의 특례규정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안은 국가폭력 과거사 사건 관련 피해자와 유족에게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금전적 피해회복을 추진함에 있어 통일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피해자 구제 중심 모델로서 실질적인 배ㆍ보상적 정의가 실현되는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회복 등 과거사 정리 과정에서 피해자 및 유족이 개별 소송을 거치면서 겪어야 했던 2차 피해와 사법적 자의성을 입법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피해자 및 유족이 개별적으로 제기하는 소송과 개별 과거사 관련 특별법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고 배상적 정의를 충실히 실현시키는 것이 두터운 화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콘텐츠 큐레이션 : 동일주제 가장 많이 이용된 자료 추천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연구보고서에 대하여 평가해 주세요

의견(0)

연구성과에 따른 의견과 무관한 글, 선정적인 글 및 비방글 등의 게시물은 관리자에 의해 언제든 삭제 조치 될 수 있으며, 주민등록번호 형식 및 연속된 숫자 13자리는 입력할 수 없습니다.

입력 가능 Byte : 4000 Byte 현재 입력 Byte : 0 Byte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